스토리

(스토리) 사상 최악의 위조지폐 사건은?

하프투테이크 2023. 3. 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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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를 위조하는 행위는 개인적으로는 이득이 될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를 완전히 파탄나게 할 수 있다.

 

위조지폐로 인해 경제 질서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쟁 중에 상대국의 경제를 붕괴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위조지폐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란 케이스가 바로 나치 독일의 '베른하르트 작전' 이다.

 

영국 경제를 붕괴시켜라!

 

이 작전을 주도한 이는 히틀러의 심복으로, 나치 친위대(ss)를 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였다.

 

사실 전쟁 초기에 이 작전을 처음 구상했던 쪽은 독일 중앙은행이었으나 힘러가 이를 방해했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전쟁 후기에 힘러가 영국 경제를 파괴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사용한다는 구상을 실천에 옮기려고

 

했을 때는 독일 중앙은행이 반대를 했다.

영국이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할 경우 독일 경제도 파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러는 성공을 확신하며 유능한 친위대 장교 베른하르트 크루거 소령을 선발, 이 특수임무를 부여했다.

 

영국이 알게 되면 치명적인 보복을 가해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어떤 특수작전보다도 치밀하게 준비했다.

 

작전명은 크루거 소령의 이름을 따서 '베른하르트 작전'으로 명명되었다.

 

최고의 걸작을 만들기 위한 노력

 

크루거 소령은 작업을 위해 최고의 기술자들을 끌어 모았다.

 

임무의 성격상 절대적으로 기밀이 유지되어야 했으므로 독일 중앙은행의 협조를 받을 수는 없었고,

 

일반 민간인 기술자를 투입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크루거 소령은 확실한 대안을 찾아냈다.

 

강제수용소의 죄수들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강제수용소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폴란드인, 집시 등 수많은 죄수들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단지 인종 차별의 이유로

 

잡혀와 있었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 기술자가 많았다.

 

그중에는 당연히 인쇄공, 조판공, 잉크 제조인, 더 나아가 위조지폐 제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지폐 제작과 관련된

 

수많은 전문 기술자가 있었다.

그루거 소령은 이들 중 고르고 골라 뽑은 최고 기술자들을 베를린 인근의 특별수용구역에 집결시킨 다음

 

영국 지폐를 위조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에게는 독일 시민에게 주는 것과 같은 정규 배급식량과 민간인 옷이 주어지고 사회에 있는 친척에게 물건을 받는 것도

 

가능했으며 휴일에는 취미생활을 즐기며 쉴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는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에 비하면 정말 천국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참가하는 베른하르트 작전은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 

 

작전이 종료되면 관계자 전원이 입막음을 위해 제거될 가능성이 높았다.

 

수용자들 자신이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기회만 오면 탈출을 시도했지만, 

 

크루거 소령 역시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용소에 화제가 발생했을 때조차 그 누구도 탈출하지 못했다.

 

결국 수용자들은 지금 당장 살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임무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로 돌아간 베른하르트 작전

 

나치 점령하의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들을 끌어 모았음에도 세계의 기축 통화인 영국 파운드화를

 

위조하는 작업은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해내고 말았고, 1943년 여름에는 잉글랜드 은행이 발행한 진짜 지폐와 똑같은 

 

영국 파운드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독일은 생산한 위조지폐를 완성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1등급은 중립국과의 무역에 사용하고 

 

2등급은 점령지의 현지인 첩자들에게 주는 보상금으로 썼다.

 

3등급은 영국 상공에 대놓고 뿌려 혼란을 초래할 계획을 세웠는데, 

 

외국을 통해 들어간 것만으로도 이미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참에 이 작전까지 실행되었다면 

 

영국 경제는 정말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완성된 시점이 너무 늦어 있었다.

 

이미 독일은 전쟁에 패하고 있었으며, 애초 계획대로 영국 상공에 위조지폐를 뿌릴 비행기도 없었다.

 

힘러도 차츰 위조지폐 작전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작업에 관계한 수용자 전원을 처형하고 계획을 은폐할 생각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비극을 초래할 이 계획을 차단한 것은 실행 책임자인 크루거 소령이었다.

이 작전이 폐기된다면 수용자들이 처형될 뿐 아니라 임무가 사라진 그 자신은 러시아 전선에 나가

 

소련군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크루거는 연합군이 독일을 점령한 뒤에 저항조직이 사용할 위조지폐와 가짜 신분증 등을 만드는 데

 

자신의 위조공장이 필요하다고 힘러를 설득했고, 

 

알프스로 시설 및 인원을 모두 옮겨도 좋다는허락을 받아내는데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작업이 완료되었을 때는 이미 미군이 새 공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작전을 포기한 크루거 소령은 인쇄기를 파괴하고 남은 지폐를 태워버리려고 했으나 미처 처분을 마치기 전에

 

미군이 도착했고 크루거가 숨겨두었던 대량의 위조지폐와 인쇄원판이 연합군의 손에 들어갔다.

 

이로써 사상 최대의 위폐작전은 막을 내렸으나, 영국 정부는 너무도 완성도가 높은 이 위조지폐 때문에

 

화폐개혁을 실시해야 했으며 이들이 만든 위조지폐는 그 후 1980년대까지도 암시장을 돌아다녔다.

작업을 담당했던 수용자들은 다행히 패전 후 해방되었다.

 

책임자인 베른하르트 크루거 소령 자신은 독일이 완전히 전쟁에서 패하던 날, 

 

위조가 아닌 진짜 지폐를 잔뜩 가지고 사라졌으나 결국 영국군에 잡혀 잠시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후에 석방된 그는 위조 작전에 사용된 종이를 공급했던 바로 그 제지회사에 취직하여 

 

평온한 여생을 지내다 1989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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