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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진공 비행선이 날 수 없었던 이유는?

by 하프투테이크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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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비행선' 이라는 물건이 나온적이 있다.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채운 주머니를 하늘에 띄우고, 그 맡에 선실을 달아 사람이나 화물을 싣고 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에 비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도태되어 오늘날에는 특별한 화물 수송이나 장기간 체공할 필요가 있는

 

해양연구, 공중광고 등에만 일부 사용된다.

 

비행선이 날 수 있는 원리

 

비행선의 기본적인 원리는 풍선과 같다.

 

풍선에 진행 방향을 조절할 수 있도록 엔진을 달면 그게 비행선이 된다.

 

대부분의 비행선은 이 풍선을 띄우기 위해 수소나 헬륨을 사용하는데, 가장 가벼운 원소가 이것들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비행선이 수소를 사용했으나 수소는 부력이 강하며 값싸고 만들기 쉬운 대신

 

폭발성이 강해서 오늘날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비행선에 충전되는 기체는 부력은 조금 약하지만 훨씬 안전한 헬륨이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벼운 기체를 넣을수록 부력이 강해진다면, 아예 아무것도 안 들어간 진공이 더 부력이 강하지 않을까?"

 

진공 비행선, 1670년에 등장하다

 

진공 자체가 발견된 것은 1650년의 일이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시의 시장이었던 오토 폰 괴리케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두 개의 놋쇠 반구를 붙인 다음

 

펌프를 이용해 그 속의 공기를 빼고 난 뒤 양편에서 말이 끌게 하여 진공의 힘을 보여주었다.

 

둘레 20인치의 놋쇠 반구 두 개를 서로 분리하는 데 양쪽에 여덟 마리씩 총 16마리의 말이 끌어당겨야만 했으니,

 

사람들에게 진공의 힘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 실험을 유심히 본 사람들 중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수사인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지가 있었다.

 

1670년,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지는 한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이 책에는 <최고의 기술자가 내놓은 몇 가지 새로운 발명품들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라는 장이 있었는데,

 

여기 등장한 비행선이 바로 이 진공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 비행선에 대한 테르지의 착상이 처음 시작된 것은 1663년이었는데, 

 

결국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테르지의 비행선은 얼핏 보기에도 거의 일반적인 배와 흡사했다.

 

선체도 거의 배의 것 그대로고, 추진력을 제공하기 위해 선체 가운데에 돛대를 세우고 거기에 돛을 달도록 되어 있었다.

 

부력을 제공하는 네 개의 진공구는 펌프를 이용해 공기를 넣고 빼서 부력을 조절할 수 있었으며,

 

무게를 줄이고 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얇게 편 구리로 만들어야 했다.

테르지는 290kg의 중량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직경 7.5m의 구리구 네 개가 필요하며 각각의 구리구는 

 

180kg의 중량을 갖는 것으로 계산했다.

 

구리구 자체의 무게를 빼고 남는 여유 중량이면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배를 공중에 띄울 수 있다는 것이

 

테르지의 계산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테르지, 비행선 제작을 포기하다

 

하지만 테르지의 비행선은 결국 제작되지 않았다.

 

당시의 기술로 그런 것을 만들기가 불가능했던 것은 사실이나 아예 만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설계자인 테르지 자신의 양심 때문이었다.

 

본래 테르지가 이 '나는 배' 를 만든 목적은 전쟁무기로써의 사용이었다.

'하늘에서 불덩이를 떨어뜨려 배와 건물을 불태우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구상했던 것이다.

 

항공기가 없고 대포의 사정거리도 별로 길지 않았던 시대, 

 

만약 누군가가 이런 무기를 발명한다면 전쟁의 양상이 뒤바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하지만 테르지 본인이 원래 너무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비행선이 초래할 

 

그 끔찍한 결과를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후일 이런 말을 남겼다.

 

"신께서는 그런 기계를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어떤 도시도 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중폭격으로 적의 도시에서 살육과 파괴, 혼란의 참상이 현실화되는 것은 먼 훗날로 미루어지게 된다.

 

폭격기가 실전에 투입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공중폭경으로 폐허로 만들고,

 

그 비극이 널리 알려져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마는 것은 에스파냐 내란 중 벌어진 1937년의 게르니카폭격이 최초였다.

하지만 테르지의 양심과는 별개로, 그가 구상한 비행선은 황실히 제작이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구 내부를 진공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인데, 

 

180kg의 구리로 만든 구를 진공으로 만들면 날기는 커녕 그 즉시 대기의 압력으로 찌그러지고 만다.

 

찌그러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면 너무 무거워져서 하늘에 뜰 수 없게 된다.

 

즉, 진공 비행선이란 애초에 완성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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