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걸 뼈 해 뼈 골
심신은 임금께 바친 것이지만 해골만은 돌려달라는 뜻으로, 늙은 재상(宰相)이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기를 임금에게 청원하는 것을 말함
초패왕(楚覇王) 항우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이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을 공략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이에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전경하는 사람이란 뜻) 범증이 반대하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참모 진평은 간첩을 풀어 초나라 진중(陳中)에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
라는 헛 소문을 퍼뜨렸다.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신하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도 항우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듣고 화가 난 항우는 은밀히 유방에게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성급하고도 단순한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진평의 이간책이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진평의 이간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평은 여러 중신(重臣)과 함께 정중히 초의 사신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부(범증을 지칭)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오."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초왕의 사신이라고? 난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이에 범증은 크게 노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옵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이렇게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謨臣)을 잃고 말았다.
+독재국가에서는 고위층이나 독재자 측근들이 독재자에게 걸해골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무 이유 없이 걸해골을 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숙청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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