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안 좋은 점은 과거를 무조건 미개한 시대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찬란했던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문명에 대한 기억은 중세에 사라졌으며, 중세 유럽인들의 삶은 미개하고 불결했다.
이로인해서 고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더불어, 과거는 낭만적이기는 해도 물질적으로는 발달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19세기까지 팽배했다.
이런 인식을 없애는데 일조한 것이 바로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에 걸쳐 크게 발달한 고고학이다.
사라진 문명 크레타의 발견
크레타 문명, 일명 미노아 문명은 오리엔트의 발달된 문화를 유럽에 전한 교량과 같은 존재였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후세 인류 역시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너무도 급속하게 멸망해 버린 탓에, 이집트와 그리스 등의 전설에만 일부 남았을 뿐
크레타가 위대한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말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가 크레타 문명의 발굴에 나섰다.
그는 독일의 연구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호메로스의 전설에 나오는 트로이와 미케네를 발굴한 것을 보았고,
그렇다면 크레타 문명의 전설로 거짓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조사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자기가 찾던 것을 발굴해내고야 말았다.
조사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신석기시대부터 이 섬에 살았던 크레타인들은 기원전 3000년에 이미 청동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해외에 수출했고,
지중해 동부 전역을 주름잡는 무역 네트워크를 건설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리고 기원전 2000년경에 세워진 크노소스 궁전의 유적에서는 막대한 양의 유물이 쏱아져 나왔는데,
바로 여기에 역사상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인류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
크노소스에서 발굴된 크레타 문명 유적의 화장실에는 현대적인 20세기 욕실과 매우 흡사한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상자 형태의 욕조와 나무로 만든 의자 형태의 변기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파이프를 통해 물이 공급되고 또 배수관을 통해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화장실이 크레타 문명 전체에서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수세식 화장실 시설이 갖춰진 곳은 크노소스 궁전 일부에 불과했는데,
이는 최상류층 일부만이 이와 같은 편의를 누리고 살았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했을 농촌의 서민들은 집 밖의 적당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생리적 욕구를 해결했을 것이며,
이것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비록 대중화되지는 못했더라도, 크레타인들이 20세기의 것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기술적 성취를 이룬
화장실을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변으로 가득 찬 중세의 길거리
크레타인들의 화장실은 위대했다.
그러나 크레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몰락으로 화장실 문화는 묻혀버렸고, 고대 로마시대의 그나마 쓸 만 했던
공동변소는 중세기에 사라져버렸다.
중세 도시의 화장실 문화는 한 마디로 정말 더러웠다.
화장실이 따로 없이 요강에 변을 본 다음 길거리에 던져버리기 일쑤였고,
보행자들은 주의하지 않으면 똥벼락을 뒤집어썼다.
그러다 보니 도로에는 인간의 배설물과 음식 찌꺼기, 도살한 가축의 피와 내장 따위가 넘쳐났고
놓아먹이는 돼지가 그것들을 뒤지고 다녔다.
시간이 좀 지나자 화장실을 만든 집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 화장실이라는 것들의 수준이 가관이었다.
두 채의 이층집 사이 공간에 판자를 놓아 말 그대로 공중에 뜬 변소를 만들고
배설물은 골목에 떨어뜨려버리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화장실에서는 골목에 찬 배설물이 큰길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판자로 골목 입구를 막아두기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생기는 사고도 있었다.
어두운 밤중에 화장실을 이용하려던 사람이 발을 헛디뎌 밑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골목에 가득 찬 배설물 속에서 익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이 집안에 설치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요즘처럼 제대로 된 하수시설이 없다 보니 대소변이 지하실로 들어가도록 만든 경우가 많았는데,
이걸 제때 치우지 않아 지하실이 배설물로 가득 차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도가 지나쳐 옆집 지하실까지 똥이 넘치도록 만들어버리는 집주인들도 많아서 이웃 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18세기 이후 수세식 변소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도 갖가지 부작용이 반발했다.
하수가 곧바로 강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던 탓에 수실 오염과 수인성 전염병이 급증했고,
홍수라도 일어나면 곧바로 하수가 역류하여 집안이 오물투성이가 되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오늘날과 같이 청결한 존재가 된 것은 상하수도의 설비가 제대로 이루어진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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