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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만약에 이러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by 하프투테이크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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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최초로 전쟁이라는 것의 

 

존재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은 1000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냈으며, 

 

전 유럽을 휩쓸어 세 제국을 붕괴시키고 수많은 민족과 정부를 뒤흔들었다.

또한 '유럽의 내전' 이었던 이 전쟁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서 유럽의 영향력이 퇴조하고,

 

그때까지는 주도권을 잡지는 못했던 미국과 일본, 소련 등의 국가가 세계적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이 일어난 배경으로는 유럽 내의 세력 갈등과 식민지를 둘러싼 투쟁의 격화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단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면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후보자는 독일 제국의 황제, 카이저 빌헬름 2세이다.

그는 영국에 맞서기 위한 해군을 조직하는 등 전대의 정책을 깨고 직접적으로 영국에게 도전했으며,

 

난폭하고 거친 언행을 삼가지 않고 정치적으로 온갖 실책을 일으켜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그 때문에 이때 독일의 황제가 그가 아니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황제의 팔이 건강했다면?

 

빌헬름 2세는 태어날 떄부터 좌반신에 이상이 있었다.

 

출산 시 거꾸로 태어났기 때문에 출산 과정에서 왼쪽 팔과 다리를 다쳐고, 특히 팔의 상태가 나빴다.

 

왼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음은 물론 발육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는 어릴 때부터 왼팔을 주머니 속에

 

찔러 넣거나 흰 장갑을 끼어 길어 보이게 만들려는 버릇이 있었다.

게다가 황실 의사들은 이 팔의 장애와 척추의 문제를 치료하겠다고 해서 강한 전기충격을 주는 치료를 계속해 감행했는데,

 

덕분에 팔이 낫기는커녕 황제의 성격만 비뚤어지고 말았다.

 

전기충격의 고통을 겪은 나머지 이를 쾌감으로 승화시켜 피학적인 성적 취향을 일부 갖게 되었고,

 

장애가 있는 팔에 자격지심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한층 더 과시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황제의 아버지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빌헬름 2세가 즉위한 것은 1888년, 독일을 통일한 황제 빌헬름 1세가 죽고 난 후였다.

 

얼핏 생각하면 두 사람은 부자관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두 사람은 조손관계로,

 

빌헬름 2세에게는 프리드리히 3세라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영국인인 아내의 영향도 있어서 군국주의적이고 독재적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나 아들과는 달리 자유주의적이었고,

 

예술과 문화를 애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후두암을 앓았고, 이로 인해 황제 자리에 오른 지 99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일찍이 독일 의사들은 그가 후두암이라고 주장하고 조기에 수술할 것을 주장했는데,

 

영국에서 특별히 초빙해온 명의가 후두암이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다.

 

만약 제때 수술이 이루어졌다면 빌헬름 2세의 즉위는 적어도 10~20년은 미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영국인 의사의 오진으로 부친을 잃었다고 생각한 황제는 영국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녀가 황제의 머리를 쏘았다면?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던 공연으로 버펄로 빌 쇼단의 '와일드 웨스트 쇼' 가 있었다.

 

이들의 공연 주제는 서부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으로, 

 

마차 모는 명수는 마차 모는 솜씨를 보여주고 말달리기의 명수는 기마술을, 사격의 명수는 총 쏘는 솜씨를,

 

카우보이는 소 모는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디언과의 전투나 야성적인 들소 떼, 회색 곰 등도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전설적인 서부의 모습을 선보였다.

 

서부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을 만족시켜주는 이 쇼는 오늘날 서부극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이 쇼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간판스타 중 하나가 전설적인 여성 명사수 애니 오클리였다.

여섯 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사냥을 했던 애니의 총 솜씨는 그야말로 전설적이어서,

 

카드 한 장이 땅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여섯 개의 총알구멍을 내는가 하면 5,000개의 1센트 동전을 하나씩 허공에 던져

 

4,300개를 명중시키는 등 보통 인간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또한 표적에 사격 솜씨를 선 보인 뒤 그녀가 선보이는 또 하나의 특별 공연이 있었는데,

 

그것은 27m 거리에서 권총을 사용해 다른 사람이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쏴 맞히는 것이었다.

 

형식적으로 관객들 중 자원자를 모집했지만, 

 

대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므로 담배를 무는 역할은 그녀의 남편 프랭크 버틀러가 늘 맡고 있었다.

1889년 애니는 버펄로 빌 쇼단과는 별개로 베를린에서 개인적인 공연을 했다.

 

그런데 이때 애니의 제안에 응해 느닷없이 관람석에서 일어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갓 즉위한 30세의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였다.

애니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불붙은 담배는 깔끔하게 잘려 허공으로 날아갔다.

 

만약 총알이 빗나갔다면 독일의 황제는 바뀌었을 것이다.

 

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애니는 한 번 더 자신의 공연에 참석해 달라는 편지를 빌헬름 2세에게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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