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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봉천역의 결투는 존재했는가?

by 하프투테이크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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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휘말린 최초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첫번째 대결전은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탄넨베르크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의 작전 목표는 두 갈래로 나뉘어 동프로이센(현재는 폴란드 영토)을 점령하고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계획에 대해, 수적으로 열세인 독일군은 애초 방어에 치중하며 서쪽에서 오는 지원군을

 

기다린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원래 작전대로라면 포기할 예정이었던 동프로이센의 민간인들이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서면서

 

애초의 계획이 뒤바뀌게 된다.

독일군은  프랑스를 상대하는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고 신임사령관 힌덴부르크와 참모장 루덴도르프를 파견하여

 

동프로이센 사수를 목표로 러시아군과 싸우기로 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두 배가 넘는 러시아군을 각개격파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독일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했던 러시아는 이 전투의 대패로 인해서

 

막대한 병력을 상실함은 물론이고 제국의 위신에도 치명타를 입었는데, 

 

이 전투의 실상에 대해서 한국에는 하나의 잘못된 상식이 퍼져 있다.

 

바로 러시아군을 지휘한 두 사령관의 비협조가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왜 패했나?

 

러시아군이 이 전투에서 패배한 결정적인 이유는 독일군이 남쪽에 있는 삼소노프 휘하의 러시아 2군을 격파하는 동안

 

북쪽에 있는 렌넨캄프 휘하의 제1군이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에 독일군은 삼소노프의 병력을 포위섬멸하고, 세력이 비슷해진 렌넨캄프의 병력을 독일 영토 밖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

왜 렌넨캄프는 삼소노프가 패하기 전에 지원하지 않았을까?

 

만약 제1군이 제때 움직였다면 독일군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해 도리어 패배했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 널리 퍼진 상식에 따르면 그 이유는 10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렌넨캄프와 삼소노프는 러일전쟁 당시에 기병사단장으로 참전하고 있었는데, 인접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렌넨캄프가

 

제때 도와주지 않는 바람에 삼소노프의 군대가 일본군에 포위되어 패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렌넨캄프에게 악감정을 품은 삼소노프는 철수를 위해 도착한 봉천역에서 렌넨캄프를 보자마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그 뒤로 두 장군은 서로를 증오하는 사이가 되었으며 이때의 원한이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렌넨캄프가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고서도 삼소노프를 돕지 않은 이유였다고 한다.

 

독일군 측이 각개격파라는 작전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사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봉천역의 결투는 실존했는가?

 

하지만 이 그럴듯한 일화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러일전쟁 당시 두 장군이 사단장으로 참전했던 것은 사실이나, 삼소노프가 고전하던 그 시기에 렌넨캄프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싸우기 위해 마주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두 장군의 결투를 목격했다고 알려진 독일군 장교 호프만 중령의 문제가 있다.

호프만은 탄넨베르크 전투 당시 루덴도르프 휘하의 참모장교였는데, 자신이 과거 하얼빈에서 목격한 두 러시아 사령관의

 

결투 장면을 기억해내고 양자가 절대 서로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 전력으로 삼소노프를 먼저 쳐야 한다는 작전안을

 

상신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호프만은 참으로 놀라운 기억력과 판단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호프만이 이 결투를 목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러일전쟁 당시 호프만이 대위 계급을 달고 관전무관단에 속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가 따라다니던 군대는 

 

러시아군이 아니라 일본군이었다.

 

호프만은 봉천회전 당시 일본군 최우익을 맡았던 구로키 다메모토 대장 휘하의 제1군 소속인 12사단에 가 있었는데,

 

무슨 재주로 봉천역에서 그 문제의 결투를 목격하겠는가? 

게다가, 제 1군은 러시아군의 기만작전에 속아 이들이 다 철수한 한참 뒤에나 봉천에 입성했다.

 

설사 결투가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호프만은 그것을 볼 수 없엇던 것이다.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진짜 이유

 

서로 증오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렌넨캄프가 삼소노프를 돕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진실은 의외로 간단했다.

 

렌넨캄프는 삼소노프가 독일군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당시 렌넨캄프군과 삼소노프군 사이에는 어떤 유효한 통신수단도 없었다.

 

당시의 무전기는 아직 성능이 미흡했고, 서로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비둘기나 전령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오직 후방으로 통하는 유선통신만이 가능했지만 이것도 후방에 있는 집단군 사령부와의 연락만 가능했지 

 

두 사령관 사이의 직접 연락은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렌넨캄프가 보다 과감한 성격이었다면 독일군은 패했을지도 모른다.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렌넨캄프가 움직이지 않는다는데 사실상 모든 판돈을 걸고 삼소노프군 격파에

 

모든 전력을 투입한 상태였다.

만약 렌넨캄프군이 전력을 쏟아 쾨니히스베르크(오늘날의 칼리닌그라드)를 향해 서진했다면 독일의 방어는 그대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귀족 출신으로 안정적인 진행을 추구하던 렌넨캄프는 부족한 보급과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돌진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주변을 경계하며 진격을 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비로소 삼소노프군의 괴멸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최초의 대결전이었던 탄넨베르크전투는 이미 독일의 승리로 결판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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