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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은 얼마나 걸렸을까?

by 하프투테이크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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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세계 최강대국 영국과 동아프리카 해안의 작은 섬나라 잔지바르가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술탄은 해외로 망명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영국이 지정해주는 술탄의 자리

 

잔지바르섬은 현재는 탄자니아에 속한 자치령이지만 한때는 독립된 왕국이었다.

 

인도양의 무역 중계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미 중세기로부터 향료와 상아, 노예 등의 

 

무역으로 부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으며, 아랍-포르투갈-오만 등의 지배를 거치다가 1861년부터는 

 

오만과 분리하여 독립된 군주국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슬람교가 주된 종교였으므로 지배자는 술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영국에 의해 전통적인 수입원이던 노예무역을 금지하라고 강요받고,

 

영국과 독일의 세력권 다툼 과정에서 영국의 보호령이 되자 이에 대한 국내적 불만도 존재하게 되었다.

 

다행히 5대 술탄인 하마드 빈 투와이니가 영국의 정책에 협조적이어서 우호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1896년 8월 25일에 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술탄이 급사하자 2대 술탄의 막내아들이자 투와이니의 조카였던 할리드 빈 바르가쉬가 궁중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권좌에 오른 다음 스스로 술탄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바르가쉬가 투와이니를 암살했다는 의혹도 있다.)

 

만약의 경우 초대 술탄의 사위이자 친영세력인 하무드 빈 무함메드를 다음 술탄으로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영국인들이 곧바로 반발했다.

이들은 술탄의 계승에 영국 영사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한 1886년의 조약을 들어 바르가쉬의 집권이

 

무효임을 지적하고 즉각 궁궐에서 퇴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르가쉬 측은 이를 일축하고 근위병, 시민 징집병, 노예, 하인까지 포함해서 2,8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집결시켜 궁궐을 요새화하고 왕실 요트이자 잔지바르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인 글래스고호를 무장시켰다.

이에 영국 측에서는 세 척의 순양함과 두 척의 포함을 항구로 집결시키고, 시내의 영국 민간인들을 피난시키는가 하면

 

항구 내의 모든 상선들을 바깥 바다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8월 27일 아침 9시까지 궁궐을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실시했음에도 바르가쉬는 영국 측과

 

정말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를 뿐

 

바르가쉬 측의 타협 시도에 대해서 영국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바르가쉬는 직접 보낸 사자가 교섭을 거부당하자 미국 대표부를 통해 재차 평화 협상을 시도했으나

 

영국 측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일 것만을 요구했다.

 

마침내 아침 9시가 되자 함대 사령관은 전투 준비 명령을 내렸고, 9시 2분에 궁전을 향한 함포 사격을 시작했다.

 

한편 육지에서는 바르가쉬의 반대파에 속하는 왕당파 잔지바르군 900명이 전직 영국군 중위 출신 근위여단장의

지휘 아래 궁궐을 공격하고, 함대에서 차출한 해병대가 이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바르가쉬군이 장악하고 있던 항구의 포대는 첫 포격에 제압되어 전혀 저항을 하지 못했다.

 

잔지바르의 유일한 군함 글래스고호는 탑재하고 있던 함포와 기관총으로 영국 함대를 공격했으나

 

곧바로 포격을 받아 격침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승무원들은 영국 국기를 게양하여 항복 의사를 밝히고 영국 해군에게 구조되었다.

 

일방적인 포격으로 목조 건물인 궁전이 박살나고 사상자가 속축하자 바르가쉬는 마침내 체념하고 

 

궁전을 나가 독일 영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궁궐에서 화재가 발생한 데다 지상에서의 반격도 없고, 계양대에 세워져 있던 술탄의 깃발도 쓰러진 것을 확인하자

 

함대 쪽에서도 포격을 중단했다. 그때의 시각은 고작 30여분이 지난 9시 40분의 일이었다.

 

전쟁 같지도 않았던 전쟁, 그 후

 

이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인 할리드 빈 바르가쉬는 즉위 3일 만에 술탄 자리에서 쫓겨났고,

 

영국 측이 원했던 대로 하무드 빈 무함메드가 7대 술탄으로즉위하여 잔지바르를 통치했다.

 

영국인들은 바르가쉬를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독일 측은 몰래 배에 태워 그를 바로 건너에 있는 독일령 탕가니카로 보냈다.

바르가쉬는 그 후 1916년까지 독일령 다르에스살람에서 살다가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1925년에 케냐의 해안도시인 몸바사에서 죽었다.

 

한편 이 전쟁으로 사망한 잔지바르 쪽 인원은 총 500명에 달했찌만 영국 측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맛을 단단히 본 잔지바르 사람들은 1963년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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