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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사자는 아프리카에만 살았을까?

by 하프투테이크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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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자를 아프리카의 초원에만 사는 동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자는 원래 지금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걸쳐서 살고 있었다.

 

유사 이전에 멸종한 북미사자와 유럽사자를 예외로 하더라도 역사시대에 사자는 많았다.

 

아프리카 전 지역은 물론 팔레스타인에서 인도에 걸친 남부아시아, 심지어 유럽의 발칸 반도 일대에까지 

 

사자가 살고 있으면서 인류의 고대 문명과 공존했던 것이다.

이 사자들은 초원뿐 아니라 숲과 사막에도 살았으며 바위산에도 서식하고 있었다.

 

고대 중근동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성서에만 해도 130회에 걸쳐 사자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많았던 사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인간들의 잔인한 사자 사냥

 

사자가 사라진 것은 전적으로 인간들의 과도한 사냥 탓이었다.

 

사자가 가장 먼저 사라진 곳은 유럽으로, 기원전 1300년경 미케네시대까지만 해도 그리스 전역에 흔했던 사자가

 

인간들의 사냥과 숲의 파괴로 인해 기원전 350년경에는 이미 희귀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된 기원후 1세기경에 완전히 멸종한다.

로마시대의 사자 사냥은 그리스시대보다 더 심했다.

 

로마인들은 원형경기장에서 동물들끼리, 혹은 사람과 싸움을 붙이기 위해 대량의 맹수를 잡아들였다.

 

로마의 영토였던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등 전 지역의 사자가 사냥 대상이 되었고

 

그 수가 격감하기는 했으나 이 시기까지는 아직 멸종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럽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자가 서식했다.

 

단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십자군 시기에 멸종하고 말았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십자군 기사들이 사자를 쳐서 쓰러뜨려야하는 악의 상징으로 보고 마구 사냥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자 사냥이 유럽인들만의 행위는 아니었다.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재위 기원전 668~627)시대의 궁전 벽에는

 

대대적인 사자 사냥의 정경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으며, 그보다 앞선 9세기의 한 아시리나 왕은 스스로의 손으로

 

"산과 숲에서 15마리의 어른 사자와 50마리의 새끼사자를 사로잡고 370마리의 강대한 사자를 쓰러뜨렸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인간과의 대립과 사냥으로 인해 리비아와 북부 이집트에서는 18세기에 사자가 사라지긴 했으나 적어도 19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아시아 사자들은 치명적인 위협 없이 존속할 수 있었다.

 

일찍부터 인구가 조밀했던 그리스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나일강 유역과 같은 일부 농경 밀집지역을 제외하면 

 

인구의 압박이 크지 않았고, 원시적인 장비만을 가지고 하는 사자 사냥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아시리나 왕이 수백 마리의 사자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말 대단한 사냥꾼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수 많은 몰이꾼과 사냥개, 보조 사냥꾼을 동원할 수 있는 군주였던 탓이다.

또한 막강한 힘과 용기로 찬양받을 뿐 아니라 갈기로 인해 태양의 상징으로 여겨진 사자를 사냥하는 것은 

 

지배자의 힘과 용기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엄청난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이기도 했으므로, 

 

수천년 동안에 걸쳐 동양의 사자 사냥은 왕후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이로인해 역설적으로 사자의 보호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총기 보급과 사자의 소멸

 

사자의 존속에 결정타가 된 것은 근대 서구 세계의 침입과 더불어 시작된 현대식 총기의 보급이었다.

 

정확도가 높은 연발총은 한때 매우 위험했던 사자 사냥을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 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맹수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애심을 품고 있던 현지 주민들의 태도와 달리,

 

이미 맹수가 소멸한 고장에서 온 유럽인들은 이국의 맹수를 사냥하는 재미에 빠져 마구 총을 쏘아댔다.

물론 이들의 사냥은 단순히 가죽을 얻기 위한 것뿐 아니라 총을 갖지 못한 현지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이들이 맹수 사냥을 한 이유 역시 옛날 아시리나 왕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사자들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을 마구잡이로 사냥한 것 역시 사자들의 생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수천 년 동안 번성하던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사자들은 유럽인의 도래와 식민지화 이래 급격하게 멸종하여

 

알제리와 튀니지에서는 1891년, 모로코에서는 1922년, 페르시아에서는 1923년(목격 보고는 1940년대에도 있음),

 

시리아의 깊은 산속에서는 1935년에 마지막 한 마리가 총에 맞았다.

이제 살아 있는 아시아 사자는 인도 서부의 한 보호구역에만 남아 있으며, 그것도 그 숲을 소유한 토후가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사자를 사냥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그 즐거움을 독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냥꾼의 욕심이 그나마 남은 한 무리의 사자를 보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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