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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조총은 정말 강력한 신무기였을까? #1

by 하프투테이크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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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나온 책들을 보면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의 참패를 조총탓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활과 창밖에 모르던 조선군은 일본군이 쳐들어오면서 총이라는 물건을 처음 보았고, 

 

이 신기한 무기의 위력에 꽁지 빠져라 줄행랑을 치면서 연전연패했다는 것이다.

 

과연 정말 그랬을까?

 

활보다 못한 총의 위력

 

하지만 이런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당시의 총이 활보다 강력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주력 무기로 사용하던 각궁은 물소 뿔과 갖가지 목재, 접착제인 아교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제작하는

 

합성궁으로 200m 가까운 거리에서도 목표를 정확하게 맞힐 수 있었다.

또한 조선군이 사용하는 화살은 일본군의 갑옷을 뚫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

 

같은 시간 동안 발사할 수 있는 횟수에 있어서도 압도적이었다.

 

숙련된 궁수가 1분에 10개 가까운 화살을 쏠 수 있는데 반해, 일본군이 사용한 조총은 

 

1분에 한 발 정도의 총알을 쏘는 게 고작이었다.

떄문에 일본군은 조총을 발사하는 사이사이에 활을 쏘아서 공격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다 조총이 조선군의 활보다 더 뒤떨어지는 점은 유효사거리 문제였다.

 

조선군이 200m 가량 떨어진 적을 활로 쏘아 죽일 수 있는데 반해, 일본군은 그만한 거리에 있는 조선군을 

 

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강선이 없는 당시의 총은 정확도가 지금의 총보다 많이 떨어졌고, 엄청난 명사수가 아닌 이상 50m 이상

 

떨어진 표적에다 대고 총을 쏘는 것은 그냥 화약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탄환 자체는 200m까지 날아가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도무지 맞추질 못했던 것이다.

 

이는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여서, 유럽 군대에서도 총은 한 사람이 정조준해서 쏘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대량의 탄환을 흩뿌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렇게 많이 쏘면 몇 발인가는 분명히 적군을 맞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은 이미 총에 대해서, 더 나아가 대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최무선이 화약 무기를 처음 개발한 지 이미 2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이미 조선에서는 각종 총통 및 화약을 이용한 불화살이 사용되고 있었다.

조총 그 자체도 실은 전쟁이 터지기 몇 년 전에 벌써 조선에 소개되어 있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무역을 하던 대마도의 영주 소오 씨가 

 

조선 국왕에 대한 공물로 1589년에 조총 두 자루를 바쳤던 것이다.

이때 "하늘을 나는 새도 능히 쏘아 맞힐 수 있다."고 한 데서 조총(鳥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일본어로는 조총을 철포(鐵砲)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수한 활과 대포를 가지고 있던 조선에서는 

 

조총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대마도 영주가 기껏 선물한 조총은 그냥 창고에 처박히고 말았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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