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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중세 기사의 갑옷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거웠을까?

by 하프투테이크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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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통 생각하는 서양의 '기사' 에 대한 이미지는 몸 전체를 철갑으로 감싸고 말에 오른 전사의 모습이다.

 

기사의 말 역시 갑옷을 입혀서 마치 탱크와 같이 묘사하곤 한다.

 

또한 이 갑옷은 어찌나 무거운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말에 오르기 위해서는 크레인이 필요하고,

 

전투 중에 기사가 일단 말에서 떨어지면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그랬을까?

 

의외로 가벼운 기사의 갑옷

 

의외일지 모르지만 중세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서 기사의 갑옷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들에 의해 무너지고 시작된 중세 초기 기사의 갑옷은 군데군데를 철판으로 보강한

 

쇠사슬 갑옷이었으며, 십자군에 참가해서 이슬람과 싸운 기사들의 갑옷도 죄다 이런 쇠사슬 갑옷이었다.

 

아동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반짝이는 철판으로 된 판금갑옷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중세가 절반은 지난 후였다.

몸 전체를 철판으로 덮는 중세 갑옷이 나타난 것은 무려 15세기 초의 일이다.

 

갑옷의 형태가 이렇게 변화한 것은 석궁이나 장궁, 화승총과 같은 투사무기의 발달로 인해 

 

방어력 증대가 필요해졌던 탓이다.

 

잘 만든 판금갑옷은 그 시대의 총탄이나 화살에 맞았을 때 상당히 효과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었다.

이런 갑옷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중세 초기의 쇠사슬 갑옷보다 무거운 강철제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가렸을 때의 무게가 고작 30kg내외였으며,

 

이는 현대 한국군의 완전군장 무게보다 가벼운 것이다.

 

게다가 어깨와 허리에 무게가 집중되는 현대식 군장에 비해 중세의 갑주는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전신에 그 무게가 분산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움직이기가 편했다.

실제 전장에서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갑옷을 입는다면, 과연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방어력만으로는 싸울 수 없다.

 

적을 타격할 수 있는 공격력은 물론, 적의 공격을 피하고 내 공격을 피하는 적을 추격할 수 있는 기동력도 있어야 하는데

 

무거운 갑옷은 기동력을 감소시킨다.

 

실제 중세의 기록을 보면 전신에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훌쩍 뛰어올라

 

말에 타는 기사들에 대한 내용이 허다하다.

 

토너먼트용 갑옷이 따로 있었다

 

그렇다면 중세 기사의 갑옷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 심지어 80~100kg에 달할 정도로 무거웠다는 상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그만큼 무거운 갑옷이 존재하기는 했다.

 

다만 그 무거운 갑옷은 실전용이 아니라 토너먼트용이었다.

'토너먼트(Tournament)'는 오늘날 둘씩 짝을 지은 경쟁자들이 서로 대결을 펼쳐 패자는 탈락하고 승자들끼리 

 

계속 맞붙어서 최종적으로 한 사람만 살아남는 경기 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본래는 중세 기사들이 1:1로 맞붙는 마상시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또는 주스트<joust>라고도 한다.)

 

영화 같은 곳에서 종종 보이는, 두 사람의 기사들이 장창을 들고 트랙에서 맞붙는 시합이 바로 토너먼트이다.

이는 결투가 아닌 스포츠 시합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들판이 아닌 정식 시합장에서 진행 되었고,

 

관중석을 만들어 구경 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단, 같은 시합이라고 해도 1:1의 개인적 대결인 토너먼트와 달리 많은 기사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져 벌이는 단체전은

 

'멜리(melee)'라고 불렀다.

이런 토너먼트에서는 기사의 기동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기사의 역할은 단지 말에 올라타고 앞으로 돌격하는 것뿐이며, 상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복잡한 움직임은 없었다.

 

일직선으로 달려간 두 기사가 맞부딪히면 둘 중 하나가 말에서 떨어지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토너먼트는 스포츠이지 목숨을 건 결투가 아니었다.

 

시각 효과를 위해서 창도 잘 부러지도록 만들었고, 기사가 말에서 떨어져 승패가 나지 않으면

 

관중들이 재미없어 하기 때문에 안장의 구조도 바꿔서 올라탄 사람이 쉽게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스포츠화의 또 다른 영향은 바로 안전의 추구다.

목숨을 건 전투라면 기동성을 감안하여 방어력을 희생한 갑옷을 입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완전히 스포츠로 변화된 토너먼트용의 갑옷이라면,기동성을 무시하고 방어만 극단으로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다 보니 토너먼트용 갑옷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거운 중장갑이 되고 말았다.

총화기의 발달로 인해 갑옷을 입은 기사가 실전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뒤에도 토너먼트 시합은 

 

스포츠로 상당기간 맥을 이어갔고(영국에서 최후의 토너먼트 경기가 열린 것은 1839년이다.),

 

자연스럽게 현존하는 갑옷 유물의 상당수가 이런 토너먼트용 갑옷이었다.

 

그것이 모든 중세 갑옷은 무거웠다는 오해를 낳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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