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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미스터리) 이스터섬은 왜 폐허가 되었을까?

by 하프투테이크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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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한가운데,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 가장 가까운 육지는 폴리네시아의 피트케언섬, 무려 2,100km나 떨어져 있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은 이 섬을 '큰 땅' 이라는 의미의 "라파누이", 또는 '세계의 배꼽(중심)'  이라는 의미로

 

"테피트오테헤누아" 라고 부르지만, 외지인들은 유럽인들이 이 섬을 발견한 날이 부활절(이스터) 이라는 이유로

 

이 섬을 "이스터 섬" 이라고 부른다.

이 섬의 이름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한 석상을 떠올린다.

 

풍족한 환경의 이스터섬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폴리네시아 계열의 원주민들이다.

 

이들은 지원후 900년경에 카누를 타고 이 섬에 처음 들어왔다.

 

'호투 마투아' 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족장이 그 장본인이라고 전해지며,

 

그의 후손들은 12개의 씨족으로 나뉘어 섬을 분활하고 공존했다고 한다.

호투 마투아의 일족이 이주한 뒤 다른 사람들이 섬에 들어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모든 섬사람들은 그들의 후예인 것으로 보인다.

 

두 번 다시 사람들이 이주해 오지 섬사못할 만큼 고립된 곳이었지만, 

 

세 개의 화산이 모여서 만들어진 이스터섬은 충분히 풍요롭게 살아갈 만큼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섬 전체의 지형이 평탄하여 각 지역 간의 교류가 용이했고, 화산 덕분에 토양은 비옥했으며

 

섬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바닷가에는 물새들이 가득했고 바다에 나가면 참치 같은 큰 생선과 돌고래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세 개의 화산에서는 각각 성질이 다른 돌이 산출되어 도구를 만들거나 조각을 할 재료도 넉넉했다.

 

풍족한 환경에서 딱히 할 것도 없던 섬사람들이 소일거리로 만들기 ㅅ작한 것이 바로 사람 모양의 석상 '모아이'다.

 

섬사람들은 어떻게 거대한 모아이를 세웠을까?

 

모아이를 처음 본 유럽인들은 가난한 원주민들이 어떻게 거대한 석상을 만들고 운반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갖가지 기상천외한 의견들이 나왔다.

 

남아메리카의 잉카인들이 이스터섬으로 이주하여 문명을 건설했음이 틀림없다는 주장부터 

 

이스터섬이 먼 옛날 태평양에 존재했던 무(Mu)대륙의 잔재라는 주장, 

 

심지어는 외계인들이 이스터섬에 와서 모아이를 만들었다는 엉뚱한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모아이는 실제 이스터섬 주민들의 힘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게다가 현대 학자들이 실험해 본 결과 그렇게 많은 힘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먼저, 세 화산 중 동남쪽에 있는 라노 라라쿠에서 석상의 몸통을 만들 응회암을 채굴한다.

석벽에 붙어 있는 상태로 석사으이 모양을 만들고, 

 

이를 떼어낼 때까지 돌로 된 연장을 사용하는 수십 며으이 석공만 있으면 충분히 작업이 가능했다.

 

공구를 만드는 단단한 돌은 또 다른 화산에서 얻었다.

제일 인원이 많이 필요한 공정은 제작이 끝난 석상을 분화구의 채석장에서

 

각 씨족의 영토인 해변까지 운반한 후 세우는 과정이다.

 

하지만 가장 큰 모아이도 500명 정도의 인원만 있으면 세울 수 있었고, 

 

전성기 이스터섬의 인구는 10,000명 이상이었으므로 노동력 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석상을 채석장에서 해안까지 옮긴 기술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오늘날에는 롤러, 또는 썰매를 이용해서 옮겼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는 석상 밑에 돌을 채우면서 천천히 바로 세운다.

 

이스터섬의 멸망

 

이렇게 풍요로웠던 세월은 한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이스터섬에 멸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섬을 덮고 있던 울창한 삼림이 주민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삼림뿐 아니라 야생동물들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환경 파괴의 1차 원인은 농경지 조성이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 농토를 만들었으며, 연료로 쓰기 위해서 나무를 베기도 했다.

 

또, 모아이 제작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나무를 조달해야 했다.

하필이면 이스터섬의 장례 관습은 화장(火葬)이었다.

 

여기에도 대량의 나무가 필요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자 저지대의 숲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숲이 파괴되자 토양도 황폐해졌고, 숲에서 얻을 수 있었던 많은 자원들도 사라졌다.

역설적인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터섬의 지배층은 숲의 보존이 아닌 모아이를 만드는 데 더 큰 노력을 들였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이 조상신의 형상인 모아이숭배를 통해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헛된 믿음 탓이었다.

 

식량을 구하는 데 쓰이는 카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아이를 떠받칠 기둥으로 쓰기 위해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졌고,

 

다음 세대의 거목이 되어야 할 작은 나무들은 밭을 만들거나 연료를 얻기 위해 잘려나갔다.

여기에 인간을 따라 들어온 쥐들이 나무의 열매나 씨앗을 갉아 먹어 재생산에 방해가 되었다.

 

17세기 들어서자 마침내 숲도 사라지고 모아이 제작도 끝났다.

 

이스터섬의 생존 환경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다.

 

서식 환경이 파괴된 데다가 대부분의 새가 섬을 떠나거나 멸종했고, 배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큰 나무가 없어 

 

더 이상 바다에 나가 돌고래와 참치를 잡아올 수 없게 되었다.

토양이 황폐화된 탓에 농사도 어려워지자 섬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폭발했고,

 

전쟁과 폭력, 마침내 식인까지 만연하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18세기에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때 섬의 인구는 2,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섬이 파괴되었을 때 떠날 수조차 없었던 이스터섬 주민들의 과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가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디로 떠날 수 있을까?

 

환경이 파괴되어 극한에 몰린 이스터섬 사람들이 식인까지 일삼게 되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구가 황폐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 역시 그러한 행동을 일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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