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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토리) 엘라가발루스 황제가 저지른 엽기적인 행동들?

by 하프투테이크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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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가 미쳐버린 황제였다면, 엘라가발루스는 장난기에 미친 황제였다.

 

그가 벌인 장난 행각은 제국의 정치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실로 처치곤란이었다.

 

엘라가발루스의 즉위

 

로마의 23번째 황제였던 엘라가발루스는 본래 황제가 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집안은 시리아의 에메사(오늘날의 홈스)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태양신의 제사장 가문이었으며,

 

그 개인적으로도 황제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었다.

 

단지 큰외할머니가 황제 세프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내였을 뿐이다.

 

그의 별명인 '엘라가발루스(성스러운 장소를 관리하는 자)' 도 

 

그가 시리아의 태양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세베루스가 죽자 제위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카라칼라(엘라가발루스에게는 오촌 당숙뻘이 된다) 가

 

제위를 노린 부하 마크리누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카라칼라의 이모였던 엘라가발루스의 외할머니도 자연스레 권세를 잃고 일단 낙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 이번에는 황제 일가와 아무 관련도 없는 엘라가발루스를 

 

'실은 카라칼라의 사생아' 라고 선전했던 것이다.

마침 인기 없는 황제였던 마크리누스가 파르티아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자 군대의 불만이 치솟았고,

 

기회를 포착한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는 엘라가발루스를 내세워 시리아 주둔 로마 군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마크리누스는 곧 붙잡혀 처형되었고, 15세의 소년은 황제가 되었다.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엽기적인 행동

 

로마에서 10대의 황제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문제는 엘라가발루스가 황제, 더 나아가 로마 지도층으로서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원로원 의원이던 그의 친아버지는 일찍 죽었고, 어머니는 아들이 제위에 오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라가발루스는 태양신의 제사장으로서의 교육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받지 않았다.

 

통치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최고 권력을 쥐었을 때 하는 짓은 한 가지밖에 없다.

엘라가발루스는 곧바로 제국의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멋대로 놀아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그나마 진지하게 봐줄 만한 것은 로마에 태양신 신앙을 퍼뜨리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황제가 된 뒤에도 태양신에 대한 열성적인 신앙을 유지하며 태양신의 제사장이라는 지위를 

 

계속 가지고 있던 엘라가발루스는 에메사에 있던 태양신의 성스러운 돌을 로마로 가져와 

 

로마 시내에 새로 지은 신전에 모셨다.

그리고 다른 모든 시앙보다 태양신을 모시는 신앙이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장난질 그 자체였다.

 

동물을 좋아해서 개나 수사슴, 사자나 호랑이를 훈련시켜 자기가 탄 마차를 끌게 하기를 즐긴건 괜찮았다.

 

그리고 다른 황제들이 그랬듯이 대규모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초대한 것까지도 좋았다.

 

하지만 엘라가발루스의 연회에 나온 '음식' 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식탁은 유리나 대리석, 상아로 만들어낸 음식으로 채워져 있기 일쑤였고, 

 

손님들은 황제 앞에서의 예의를 지키느라 그걸 먹는 척해야만 했다.

 

가짜 대신 진짜 음식이 나온다고 해도 그 음식 속에는 벌레나 짐승 배설물이 수시로 들어 있었고,

 

어쩌다 정말 잘 먹은 사람은 식곤증으로 잠든 사이에 황제의 명을 받은 노예들에 의해 맹수가 든 우리에 갇히곤 했다.

 

그나마 엘라가발루스는 칼리굴라만큼 사악하지는 않아서, 

 

우리 속의 짐승들은 사람을 덮치지 않도록 훈련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좀 덜 나쁜 계획으로 연회에 온 손님들에게 장미꽃잎을 퍼부어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착안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는데,

 

그 양이 너무 지나쳤던 탓에 참석한 손님들 중 몇몇이 꽃잎에 질식해 죽고 말았다.

 

여기까지였다면 그래도 로마 시민들은 참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방 출신인데다 지도자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엘라가발루스는 궁궐 밖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중요한 국가 행사에 벌거벗은 여자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등장하는가 하면,

 

노예들을 시켜 거미집이나 독사 따위를 모아들여서는 신하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한번은 선대 황제들이 지은 웅대한 건축물에 버금가는 결과물을 갖고 싶었는지 거대한 목욕탕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단 한 번 목욕한 다음 그 목욕탕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엘라가발루스는 신관으로 봉직하는 기간 내내 순결을 지켜야 하는 베스타 여신의 여사제를 농락하여 애인으로 삼았는데,

 

이는 원래대로라면 생매장을 당해야 하는 중죄였다.

 

게다가 황제에게는 동성애 취향까지 있었고, 그것도 여자 역할을 즐겼다.

황제가 동성애를 선호하는 것만이라면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의 사례도 있어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것도 남자 역을 즐길 때 이야기였다.

 

엘라가발루스는 여자 역할을 즐겼을 뿐 아니라 해방노예를 신랑으로 하고 자기를 신부로 한 결혼식까지 올렸고,

 

궁궐 내에서 남자들에게 창녀처럼 몸을 팔았다고 한다.

 

거금을 걸고 자기를 여자로 성전환 시켜줄 의사를 모집했다고도 하며,

 

일설에 의하면 배꼽 자리에 여성의 성기를 만들어 여자로서의 환락을 맛보았다고도 하지만 신빙성은 별로 없다.

 

엘라가발루스의 비극적인 최후

 

이런 식으로 나라를 통치하니 국고는 바닥이 드러났고,

 

엘라가발루스에 대한 시민과 군대의 반감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를 황제로 만들었던 외할머니 율리나 마이사도 손자가 황제로서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엘라가발루스의 이종사촌 동생인 알렉산데르를 후계자로 삼도록 했다.

별 생각 없이 외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던 엘라가발루스는 주변의 동향이 알렉산데르를 향하는 것을 알자 위협을 느끼고

 

사촌 동생을 죽여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염증을 내고 있던 친위대 장병들은 황제가 아니라 사촌 동생 알렉산데르를 지지했고,

 

이 생각 없는 황제는 친위대 병영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벌거벗겨진 시체가 된 채로 로마 시내를 질질 끌려 다니다가 티베르강에 던져졌을 때,

 

이 소년 황제의 나이는 고작 1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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